연산오계
연산오계 정보
유래
천연기념물 지정배경
외형적 특징
연산오계vs오골계
생태적 특징
지리적 특징
관리지침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오계를 길렀는지는 정확치 않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인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 1309~1385) 선생의 문집 '제정집'에 오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허준 선생이 편찬한 동의보감에 오계의 약효가 상세히 설명돼 있다.

지금까지는 오계의 원산지가 동남아시아이며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됐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사육중인 오골계들이 우리나라의 오계와 확연히 다른 점으로 보아 오래 전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뒤 토착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오계와 관련된 자료로는 연산에 사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도지사급) 이형흠(李亨欽)이라는 사람이 25대 철종임금께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조 19대 숙종임금이 중병을 앓던 중 연산오계를 드시고 건강을 회복한 후부터 충청지방의 특산품으로 해마다 임금님께 진상되었다는 얘기가 전해내려온다.

또 연산군 때에는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정승들까지도 오계를 먹지 못하도록 했으며, 이를 어기면 벼슬을 빼앗고 귀양까지 보냈다고 하는데 이런 류의 설화들은 연산군의 폭군 이미지와 오계의 희귀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얘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오계는 야생성이 강해 사육이 어렵고 사육기간이 오래 걸리는 등 경제적 가치가 아주 낮은 가축이다. 그래서 빨리 크고 살도 많이 찌는 교잡종 오골계들이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경제성만 추구하다보니 원형에서 너무 많이 멀어진 측면이 강하다. 현재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잡종 오골계들은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며 기이한 모양이 계속 출현하고 있다. 가장 많이 확인된 형태로는 △5~6개의 발가락 △전복 또는 맨드라미 모양의 볏 △다리 또는 발가락 사이의 잔털 △머리 위의 깃털 △노란색 또는 갈색 눈 등이 있다.
중국 오골계 일본 오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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