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오계
연산오계 정보
유래
천연기념물 지정배경
외형적 특징
연산오계vs오골계
생태적 특징
지리적 특징
관리지침
연산오계가 왜 계룡산 일대에서만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계룡산이 제공하는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일 것이라는 풍수연구가들의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산 화악리 사람들은 계룡산의 자연조건 중 ‘물’이 오계 사육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계룡산에는 백두산의 천지(天地)에 해당하는 지소(池沼)가 두 곳 있다.

각각 암용초, 숫용초라 부르는데 하나는 음천(陰川)이고 하나는 양천(陽川)이다. 화악리에는 두 지천의 수맥에서 솟아오르는 샘이 세 곳 있는데, 3년 가뭄에도 마르는 법이 없다. 화악리 사람들은 이 물을 먹고 산다. 화악리 오계도 계룡산 물인 '해나무골' 샘물을 직접 대먹이고 있다.

또 한가지 화악리에서 오계가 잘 자라는 이유로 ‘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화악리(花岳里)는 마을 이름이 말해주듯 산(岳)이 첩첩이 쌓여 한송이 꽃(花) 모양을 이루고 있다. 뒤로는 계룡산이 길게 뻗어있고 앞으로는 천호산(天護山)이 계룡산을 따라 흐르고 있다(連山). 계룡(鷄龍)은 주봉인 천황봉에서 쌀개봉, 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닭 볏 모양의 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천호산은 하늘이 계룡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산이라는 뜻이다.

화악리에 전주 이씨의 보금자리를 튼 분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9세손인 화산공(華山公) 오륜(五倫)이다. 화산공은 지리에 아주 밝은 분이셨는데 당시 조정에서도 부름을 받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한다. 화산공께서 약 400년 전 화악리를 둘러보시고는 "큰 부자는 안 나도 피난고지는 된다"고 하시며 이 곳에 정착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전쟁 때 바로 앞 마을까지 빨치산의 습격을 받았으나 화악리는 무사했다고 하며, 태풍이나 수해 등 자연재해로부터도 자유로웠다. 화악리 사람들은 "심지어 전염병도 첩첩 '꽃잎'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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