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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30 18:44
연산오계, '맛의 방주' 후보에 오르다
 글쓴이 :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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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00> 사라져가는 전통 먹거리

[중앙일보] 입력 2013.06.13 00:42 / 수정 2013.06.13 11:49

연산오계·칡소·앉은뱅이밀 … 올 가을 '맛의 방주'에 오를까

이지영 기자
세상이 빠르게, 편리하게 바뀌면서 잃어버린 맛들이 있습니다. ‘슬로푸드 국제본부’에서는 1997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소멸 위기에 놓인 전통 먹거리들을 찾아 ‘맛의 방주(Ark of Taste)’ 목록을 만들어 보존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품 중 그 방주에 오를 만한 후보 다섯 종을 소개합니다. 슬로푸드 국제본부의 한국위원회 격인 사단법인 슬로푸드 문화원에서 선정한 식품들입니다.

이지영 기자


1 연산오계  피부·뼈·발톱이 모두 검은 닭이다. 깃털은 청자색이 감도는 흑색이며 중국·일본 오골계와 달리 정강이와 발가락 사이에 잔털이 없다. 발가락은 4개. 볏은 왕관 모양이고, 눈은 눈자위와 눈동자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온통 까맣다. 연산오계는 야생성이 강해 몹시 사납다. 곡물 사료보다 벌레나 풀·모래 등을 더 즐긴다.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예방하는 리놀렌산을 쇠고기의 7∼8배, 돼지고기의 3배인 22.6%가량 함유하고 있다.

 연산오계는 일찍이 식재료라기보다는 보신용·약용으로 쓰였다. 연산오계 수탉은 산모의 대하증이나 자궁출혈을 치료하는 데도 쓰였고, 암탉은 마비증세나 신경통·타박상·골절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기록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려 문인 이달충의 문집 『제정집』에는 신돈이 나이 들어 오계(烏鷄)와 백마(白馬)를 먹고 정력을 보충했다고 나온다.

 또 조선 19대 임금 숙종이 중병을 앓던 중 연산오계를 먹고 건강을 회복한 후부터 충청지방의 특산품으로 해마다 궁중에 진상됐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동의보감』에도 ‘뼈와 털이 모두 검은 연산오계가 가장 좋다. 눈이 검은 새는 뼈도 반드시 검으니 이것이 진짜 연산오계’ ‘연산오계가 중풍에 특별한 효과를 보인다’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연산오계는 특유의 야생성 때문에 사육이 쉽지 않다. 일반 닭처럼 좁은 곳에서 사육하면 다툼이 일어나 죽기 일쑤인 데다, 스트레스에도 취약하다. 또 지역에 대한 배타성이 강해 계룡산 사방 30리를 벗어나면 연산오계의 특성이 사라진다고 한다. 연산오계는 현재 충남 논산시 연산면 지산농원에서만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1980년 천연기념물 265호로 지정돼 식용으로 사용하는 개체 수는 엄격하게 관리된다.

2 제주 푸른콩  제주도 푸른콩은 ‘푸린독새기콩(푸른달걀콩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으로 불리며 제주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콩이다. 제주 푸른콩은 완전히 여물어도 살짝 연둣빛이 돈다. 예부터 제주도에선 흰 콩이나 노란 콩도 재배했지만 푸른콩을 특별히 ‘장콩’이라고 불렀다. 장(醬) 원료로 푸른콩이 가장 적합했다는 증거다. 다른 콩에 비해 푸른콩은 삶았을 때 단맛이 높고 차진 편이다. 쌀로 친다면 찹쌀에 비견된다. 이런 맛 특성에 따라 된장용·콩국수용으로 많이 이용된다. 또 잎도 은은한 단맛이 돌아 쌈용·절임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콩잎을 따서 별다른 양념 없이 간장만 부어 절여도 담백하고 향기로운 콩잎 장아찌가 된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푸른콩의 재배 면적은 점점 줄고 있다. 수확하기까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푸른콩은 밑동이 다른 품종에 비해 유달리 굵고 키가 크다. 그래서 기계로 수확하기 어려워 일일이 손으로 베어내야 한다. 또 푸른콩은 늘 살펴보다가 영글자마자 수확해야 한다. 영글면 바로 콩깍지가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확하는 도중에도 터지는 경우가 많아 “베는 거 반, 줍는 거 반”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푸른콩은 수확시기가 늦어 태풍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크고, 수확 후 동절기 작물 재배에도 불리하다. 그래서 농부들이 자기 식구 장 담그는 용으로 조금씩만 재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3 칡소  칡소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우리 고유의 한우 품종이다. 동요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에 등장하는 ‘얼룩소’가 바로 칡소다. 한국 전통 한우 품종은 누렁이(황우)와 칡소, 제주 검정소(제주흑우), 그리고 검정소(흑우) 등 네 가지다. 이 가운데 황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쉽게 보기 힘든 품종이 됐다. 일제강점기 ‘일본 소는 검정소, 한국 소는 누렁소’라는 일제의 축산 정책 때문에 누렁이를 제외한 나머지 품종은 대부분 도축됐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에도 칡소는 누렁이를 위주로 한 한우개량사업에 떠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칡소의 호랑이 무늬는 잡종이 아니냐는 빌미를 제공하게 됐고, 칡소는 팔기도 힘든 잡소로 전락했다. 이런 칡소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대 후반 본격화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와 학계가 함께 벌인 활발한 복원사업으로 칡소 사육 마릿수가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에 자라고 있는 칡소는 1000마리 안팎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400여 마리가 울릉도에 있다. 울릉도 이외에선 충북과 경북 지역에서 많이 사육되고 있다. 울릉도에서 칡소 사육이 활발하게 시작된 건 2006년부터다. 울릉도 전통 산업인 오징어잡이가 예전만큼 활기를 띠지 못하면서다. 울릉군은 학계와 손잡고 적극적으로 칡소 복원과 사육에 들어갔다. 바다 한가운데 청정지역에서 자란 한우라면 먹을거리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울릉군 농업기술센터가 중심이 돼 종우(種牛)를 들여와 번식시키는 한편, 축산 농가에도 송아지를 분양해 ‘고기 소’로 키워나가고 있다.

4 앉은뱅이밀  우리나라 고유의 토종밀이다. 키가 50∼80㎝로 작아 ‘앉은뱅이밀’이라고 한다. ‘땅밀’ ‘난장이밀’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 ‘농림10호’로 육종됐다. 그러다 45년 노먼 블로그 박사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가 ‘소노라64호’로 육종돼 60년대 전 세계의 1세대 녹색혁명을 이끌었다. 서양밀은 키가 커서 바람의 영향과 병충해에 약해 수확량이 적었다. 키 작고 야무진 밀, 앉은뱅이밀의 개량종인 ‘소노라64호’는 밀 수확량을 60%까지 증가시켰다. 노먼 박사는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70년 농학자로서 세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우리 토종밀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미국 밀의 90%는 우리 앉은뱅이밀 유전자를 갖고 있다.

 앉은뱅이밀은 우리 기후에 가장 적합하다. 생육 기간이 짧아 이모작하기 좋고, 수확량 감소가 거의 없다. 최근 파종기와 봄철 강우량이 많아지는 기후 조건에서도 끄떡없이 이겨낸다. 병충해에도 강하다. 또 글루테인이 적은 대신 당도가 높아 맛이 아주 구수하다. 전이나 칼국수·수제비 등 우리 음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밀이다.

 앉은뱅이밀의 위기는 1984년 정부가 밀수매를 중단하면서 왔다. 당시 수입밀이 들어오면서 앉은뱅이밀을 가는 방앗간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앉은뱅이밀은 차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맷돌식 제분기를 써야 하지만, 대형 제분공장들은 모두 수입밀에 맞는 제분기를 가동했다. 이때 앉은뱅이밀 지킴이로 나선 곳이 경남 진주 금곡정미소다. 끝까지 맷돌식 제분기를 고집했고, 30여 년 전부터는 채종포(종자를 채취할 목적으로 설치한 밭)도 운영한다. 중간에 삐죽 솟아 나오는 돌연변이는 일일이 손으로 잘라내고 중간 교잡을 막기 위해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5 적토미  붉은 쌀, 적토미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에서 재배됐던 우리나라 토종 야생벼다. 그러나 수확량이 일반벼의 25%에 불과하고 갈대처럼 키가 커 재배하기 힘들었다. 홀대를 받던 적토미는 수확량 많은 벼 품종이 계속 보급되면서 사실상 사라지고 말았다. 적토미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이르러서다. 2000년 전남 장흥 운주마을 농민들이 일본 자연농법연구회와의 교류를 위해 규슈를 방문했을 때였다. 논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붉은 잎의 키 큰 벼가 눈에 띄었다. “저 벼가 뭐냐”고 묻자 일본 농부들은 “일제시대 때 한국 농업을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벼”라고 했다. 바로 적토미였다. 일본 농부들은 적토미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적토미에 염증이나 노화를 막아주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우리 야생벼, 적토미를 들여와 장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2003년. 하지만 경작은 쉽지 않았다. 동네 논에 적토미를 심었지만 키가 150∼175㎝나 자랐다. 약한 바람에도 쓰러졌다. 또 해충도 득달같이 달라붙었다. 처음 본 품종이어서 호기심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재배 농가들 사이에 갈등도 많았다. ‘농약·화학비료를 쓰지 말자’는 약속이 번번이 깨졌다. 제대로 적토미 키우는 법을 찾아내기까지 5년여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제 적토미는 항균·항산화 능력을 갖춘 기능성 쌀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충남·경남 등 다른 지역까지 재배 면적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맛의 방주’란

소멸 위기 먹거리 보존사업
76개국 1162개 식품 올라


‘맛의 방주’는 이탈리아 브라에 본부를 두고 150여 개국 회원 10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국제기구 ‘슬로푸드 국제본부’의 프로젝트다. 잊혀져 가는 전통 먹거리의 맛을 재발견하고 지키기 위해 소멸 위기에 처한 음식문화유산을 찾아 목록을 만들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맛의 방주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총 76개국의 1162개 식품을 ‘맛의 방주’ 목록에 올렸다. 일본 음식도 고등어로 만든 발효초밥 등 27종이 목록에 포함돼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 식품 중 ‘맛의 방주’에 오른 품목은 없다.

 ‘맛의 방주’ 선정 기준은 ▶특징적인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정 지역의 환경·사회·경제·역사와 연결돼 있어야 한다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한다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된 것이야 한다 등이다. 선정 절차는 각 국가위원회에서 심사, 후보를 정해 슬로푸드 국제본부에 신청하면 국제본부 산하 생물종다양성재단에서 최종 승인한다. 우리나라에서 슬로푸드 국가위원회 역할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슬로푸드문화원은 올해 안에 우리 먹거리 다섯 종 이상을 ‘맛의 방주’ 신규 목록에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후보 선정 작업 중이다. 7월 말까지 전국 지자체와 유관단체 등을 통해 추가 후보 신청을 받은 뒤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된 최종 후보 식품들을 9월 중 슬로푸드 국제본부에 보내 승인받을 계획이다. ‘맛의 방주’에 최종 선정된 식품들은 10월 1∼6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열리는 ‘2013 슬로푸드 국제대회’에서 특별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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